90개 지하철역이 미술관…스톡홀름에 살면 출·퇴근길이 예술

입력 2024-01-25 17:34   수정 2024-01-26 02:49


40년 만에 바뀐다는 서울 지하철 노선도의 디자인을 가만히 보다가 새삼스럽게 ‘지하철역이 진짜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역이 많다는 것은 땅 밑에 그만큼 많고 다양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자주, 누군가는 매일 그곳을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지하철역에는 의외로 다양한 공간 이용 방식이 발생한다. 역에 들어가고 나갈 땐 수직이동을 해야 하고, 승강장에선 한 자리에 서서 기다려야 한다. 긴 통로를 따라 부지런히 이동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어딘가에 눈을 둬본 적이 있었던가. 타일로 마감된 무심한 벽과 병원 광고가 난무하는 그곳에서 말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는 세상에서 가장 긴 미술관이라고 불리는 지하철역들이 있다. 시민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지하철역 내부를 예술적인 공간으로 개조한, 스웨덴 정부가 1953년부터 진행해온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결과다. 여기에 250여 명의 예술가가 참여해 90여 개의 역이 예술적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기반암을 노출한 채 그대로 활용한 역이 많다. ‘지하철역’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기능적으로 차가운 공간이 아니라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광경이 펼쳐지는 이유다.

이 중 대표적인 역은 이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실현된 곳이자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역인 ‘T-센트랄렌’이다. 이곳은 온통 푸르다. 푸르게 칠해진 거친 돌벽의 공간을 통과하면 거대한 넝쿨식물이 벽을 타고 천장으로 뻗어 올라가는 벽화가 그려진 승강장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승강장의 어두침침함이 아닌, 거대한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노동자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이들을 주제로 그린 푸른 벽화의 연장이 공간 한쪽에 있다.


푸른색과는 반대로 온통 빨강과 초록으로만 채워진 공간도 있다. 이것은 일몰의 색상과 숲의 색상이다. ‘솔나 센트럼역’에서는 스웨덴의 환경, 삼림 파괴와 같은 사회적인 이야기를 벽화 안에 담아낸다.

‘오덴프란역’에 가 보자. 지그재그 모양의 백색 조명 라인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동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아기가 탄생하는 과정 중 모니터에 나타난 심장박동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생명의 선이 시민들이 이동하는 길을 밝게 비춘다. 반면 ‘할론베르겐역’은 아이들의 낙서, 아이들이 오려 만든 종이인형과 같은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다른 역처럼 본격적으로 예술성을 전달하는 공간이기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경쾌한 즐거움을 주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스톡홀름의 지하철역들은 위의 사례 말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저마다의 디자인을 뽐낸다. 지하철역을 다니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예술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지하철역들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디자인이 독특하다거나 예술적으로 잘 꾸며져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시민들이 생계를 위해 바쁘게 이동하는 과정에 있는 장소, 사용자가 특정되지 않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장소를 경제적 논리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에 특별함이 있다.

디자인은 특별한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당연한 일상 속에,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일상 속에서 잘 디자인된 것을 누리고 그것이 사람들의 당연한 생활의 배경이 됐을 때 사람들의 삶은 더 나아질 수 있다. 스웨덴 정부는 일상적인 생활환경을 잘 조성하는 것이 사람들의 삶의 질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여기에 근현대를 지나오는 동안 스웨덴 디자인이 실천한 정신이 있다.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일상 중에 문득 마주친 것이 푸르름을 내뿜는 식물이거나, 아이들의 티 없는 천진함이거나, 생명을 알리는 하나의 선과 같은 희망이었을 때 우리의 일상은 분명 조금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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